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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공기
S7
202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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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공기 《신쵸코키》(信長公記, しんちょうこうき/のぶながこうき)는 일본 센고쿠 시대의 센고쿠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傳記) 사료이다. 다른 이름으로 신쵸키/노부나가키(信長記)이라고도 한다. 저자는 오다 노부나가의 옛 가신이었던 오타 규이치(太田牛一)이다. 원본은 에도 시대(江戸時代) 초기에 성립되었다.[주 1] 전 16권. '신쵸'는 노부나가(信長)의 이름을 음독한 것이다. 일본의 사학자 森銑三에 따르면 에도 시대에는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인명을 음독하는 관습이 있었는데(유식자 읽기) 이쪽도 그런 사례라고 하였으며[주 2] 노부나가를 '공'이라고 높여 부르고 있어 이 역시 음독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요네자와 번(米沢藩)의 우에스기 씨(上杉氏) 옛 소장본인 개인 소장 10책본이 내제(内題)에는 '신챠우키'(しんちやうき)로 되어 있어서, 원래는 '신쵸키'로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부나가의 유년기부터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를 받들고 상경하기 전까지를 제1권으로 하여, 이후 분로쿠 11년(서기 1568년)부터 혼노지의 변(서기 1582년)까지 15년을 각 1권당 1년씩 다루어 총 16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역사상 최초의 오다 노부나가의 일대기로 노부나가의 유년 시절부터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하기 직전까지를 다룬 수권(首巻, 1권), 에이로쿠(永禄) 11년(1568년) 노부나가의 상경부터 덴쇼(天正) 10년(1582년) 혼노지의 변까지를 다루었으며, 이까지의 15년에 걸치는 기록을 권당 1년씩 기록해 모두 16권(16책)으로 엮었다. 규이치 자신의 자필본인 이케다본에는 15권으로 편찬했다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는데, 수권은 책의 본편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인다. 오다 노부나가를 알기 위한 훌륭한 자료로 꼽히지만, 정작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5년 무렵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해명되지 않은 점도 적지 않다. 규이치 본인은 "내가 일부러 삭제한 것은 없으며, 창작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거짓이라면 신의 벌을 받으리라"(故意に削除したものはなく、創作もしていない。これが偽りであれば神罰を受けるであろう)라고 쓰고 있듯 저술 자세와 태도는 진지하며, 날짜순으로 기재하는 편년체 서술로써 일부 착오나 뒤섞인 부분도 발견되기는 하지만 문서상으로 확인되는 오다 노부나가의 사적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어, 사료로써 신뢰도가 높고 오다 노부나가 시기의 사정을 알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사료로 꼽힌다. 또한 저자 규이치가 오랫동안 노부나가의 측근이었던 점에서 사료로써 신뢰도는 높게 평가되며 일본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군기들과 구별되는 것으로 그 신빙성이 평가받고 있다. 즉 자료로써는 2차 자료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내용의 신뢰성은 1차 사료에 준한다는 것이다. 내용 가운데는 노부나가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이야기도 많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며, 제1권 첫머리에 "에이로쿠 11년 무진 이래 오다 단죠노죠(弾正忠)[주 3] 노부나가 공의 재세(在世)에 또한 이를 기록하였다"(永禄十一年戊辰以来織田弾正忠信長公の在世、且これを記す)고 쓰고 있어서 이 기록은 오다 노부나가의 기록이 아니라 노부나가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의 기록이라고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오타 규이치는 오와리(尾張) 가스가 군(春日郡) 출신으로 노부나가 사후에는 노부나가의 가신인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의 우필(右筆)로 일했으며, 나가히데가 사망한 뒤에는 다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섬겼다. 《신쵸코키》는 그가 나가히데와 히데요시를 섬기던 시절에 기록한 것을 토대로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역사학자 후지모토 마사유키(藤本正行)는 저서 《노부나가의 전쟁》(信長の戦争)에서 《신쵸코키》 안에서도 노부나가에 대해 '주군'(上様), '노부나가 공'(信長公), '노부나가'(信長)로 표현이 바뀌는 부분이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이에야스'라고 아무렇게나 부르거나 '이에야스 공'(家康公), '이에야스 경'(家康卿), '이에야스 님'(家康殿) 등의 경칭으로 부르는 부분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여러 시기에 걸쳐 작성했던 메모 같은 부분들을 발췌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신쵸코키》라는 것이다. 오타 규이치의 만년인 게이초 16년(1611년) 무렵 규이치의 《신쵸(코)키》를 토대로 다른 일화들을 더하여 오제 호안(小瀬甫庵)이 《신쵸키》(信長記)를 썼다. 호안의 《신쵸키》는 겐나(元和) 8년(1622년)에 간행되었고, 이후에도 재판을 거듭하여 일반에 널리 퍼졌다. 오타 규이치의 저술과 오제 호안의 저술 모두 '신쵸키'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현대에는 혼동을 막기 위해 규이치의 것을 '신쵸코키'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으로 퍼졌으며, 호안의 것을 '호안신쵸키'(甫庵信長記)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안신쵸키》는 기본적인 내용을 《신쵸코키》에 의거하고 있지만 몇 가지 내용이 다르고, 호안 자신이 다시 사관한 의도나 유교적 가치관 등의 여러 사정에 의해 호안 자신의 역사관에 토대하여 역사를 해석한 군키모노가타리(軍記物)에 가까운 책이 되었다. 같은 시대의 사서로(마찬가지로 창작이 많다고 지적되는) 《미카와 이야기》(三河物語)에서조차도 "거짓이 많다"(イツハリ多シ)고 지적되고 있다. 한편으로 호안은 규이치를 "고지식하다"(愚にして直)라고 평하였고, 그가 저술에 창작성이 없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옮긴 단순한 내용임을 비판하고 있어 '기록'이라기보다는 '읽을거리'로써 그것을 읽는 사람을 의식해 썼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호안신쵸키》는 호안의 다른 저서인 《타이코키》(太閤記)와 유사하고, 근세 일본 사회에서 간본으로써 널리 유포되어 애독되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케하자마 전투(桶狭間の戦い)나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 등 노부나가 ・ 히데요시 시기의 합전사에 관한 기본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읽을거리가 되었다. 노부나가의 일대기로써 그 뒤에도 《오다 진기》(織田真記, 오다 나가키요織田長清), 《총견기》(総見記, 엔잔 노부하루遠山信春) 등의 여러 저작이 나오게 되었다. 노부나가 자신에 대해서는 과단성 있고 정의를 중시하는 성격으로, 정력적이고 늘 분주히 뛰어다니며 정이 두텁고 도리를 중시하는, 고금에 비길 데 없는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전(大仏殿)을 불태웠다는 마쓰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가 대불전을 불태운 날과 같은 10월 10일에 사슴뿔 모양의 투구[주 4]를 쓴 노부타다(信忠)에 의해 나라 진키 산(信貴山)에서 자결하였으며, 사람들은 이를 가스가 대명신의 저주라고 수군거렸다는 기술에서는 신토(神道) ・ 불교 ・ 유교가 융합되어 있던 일본의 중세적 도덕관이 드러나고 있으며, 노부나가를 배신한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의 처자의 최후를 (그가 자신의 주군을 등진 배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딱하게 여기며 무라시게와 그 아내 사이에 오갔던 노래를 상세히 기록하는 등, 객관적인 태도 한편으로 저자 규이치의 가치관이나 인물관을 보여주는 내용도 있다. 《신쵸코키》는 2차 자료에 속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른 2차 사료에 비해 그 기술이 정확하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여러 연구에서 이 점이 부정되고 있다. 사이토 도산(斎藤道三)의 그의 한 대(代)에 미노 국(美濃国)의 국주(国主)를 차지했다는 것이나 마쓰나가 히사히데의 다몬 산성(多聞山城) 인도의 연대가 어긋나는 등 다른 자료들과의 교차 비교에서 오류가 발견되기도 하는 것이다. 양질의 편찬물로써 사료적인 가치도 높지만, 2차 사료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신쵸코키》를 연구에 사용할 때는 이 문헌(또는 특정 사본)만을 단독으로 사용하여 전면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되고 다른 1차 자료나 2차 자료도 확인하거나 다른 사본(또는 원본)과 내용을 서로 대조하는 등 적절한 사료 비판을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 안은 《신쵸코키》에 기재가 없는 사항에 대한 보족입니다) 《신쵸코키》는 사본을 포함해 20종 이상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아즈치 일기》(安土日記), 《아즈치키》(安土記), 《신쵸키》(信長記), 《신쵸코키》(信長公記) 등 다양하다. 단편이나 잔궐본을 포함하면 70본 이상이 확인되고 있다. 다이묘(大名)나 구게(公家) 등에도 사본이 전해졌고,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에 이르러 처음으로 간행된다. 브릴사에서 영어판 《신쵸코키》를 출판한 것을 계기로 해외에서도 《신쵸코키》는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의 연구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번역본의 토대가 된 존경각문고(마에다본)의 내용을 사료 비판을 행하지 않고 신용하였고,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이케다본 등 다른 판과의 비교나 1차 자료로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또한 2차 자료나 다른 사람의 연구 내용을 참고 문헌을 확인하는 일 없이 인용하고, 게다가 자신의 의견, 센고쿠 시대가 아닌 현대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한 해석 등을 거듭함으로써 피드백 루프가 생겨났고, 오류가 쌓이면서 그 상황이 좋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그 원인의 하나로는 해외의 번역자들이 일본의 문헌들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일본어 어학 실력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