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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업야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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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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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실업야구연맹 한국실업야구연맹(韓國實業野球聯盟, Korea Amateur Baseball Association, KABA)은 야구선수 진로개척 차원의 취업 지원을 통해 한국야구의 지속적인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립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산하 준가맹 단체이다. 1946년 아마야구 전신 단체가 출범 후, 성인야구 업무를 관장하는 독립 단체로 유지되어 오다 1979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서울 유치가 확정되자 야구계 발전을 위해 대한야구협회에 자동 통합되기도 했으나 야구선수 취업난 해소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며 2011년 1월 19일 대한야구협회로부터 산하 준회원 단체 승인을 받았다. 연맹 본부 소재지는 대전광역시 서구 계룡로 314번지(갈마동) 대전일보사이며 사무국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82-18번지 벤쳐캐슬빌딩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락 사무소는 서울시 양천구 목동 914번지 목동야구장(3루 데크쪽)에 확보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통합 작업으로 2016년 11월 신임 김응룡 회장을 선출하며 통합기구로 출범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이사회 안건 상정을 통해 2015년 이후 협회의 내분 등 사정으로 추진에 어려움을 겪은 실업야구리그의 운영주체로 활동할 한국독립야구연맹[韓國獨立野球聯盟, Korea Independent Baseball Association ; KIBA]으로 단체명을 변경하여 활동할 예정이다. 한국실업야구연맹(KABA: 초대 회장 / 남상현)는 2010년 9월 대한야구협회에서 탈퇴 처리된 KBBF(당시 회장: 박영길, 부회장: 김양경, 전무이사: 김용철)와 무관한 단체로 당시 강승규 대한야구협회장의 취임 공약사항中 하나인 실업야구 부활에 대한 우선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선수취업 활성화를 위해 승인된 산하단체이다. 라. 주요 역할 실업야구선수 취업기회 부여(각 구단별 매년 최소 5명 이상 신규 채용 의무화) 실업야구선수 신인선수 지명 및 선발, 채용(추천서 평가, 비공개 테스트 포함) 실업야구선수 오리엔테이션 및 기초 직무교육 과정 개설(동계 기간중 주말강좌) 연고 지자체와 협력을 통한 상호업무 역할분담(지역 홍보대사 등) 활동 범주편집 학원야구(초중고교 및 대학)를 제외한 성인 아마추어 야구를 총괄하는 단체로써 순수 아마추어 정신에 따라 주로 아마야구선수 진로 개척 지원을 위한 공익사업 위주로 활동하며 궁극적으로 대학야구와 프로야구리그와 별도로 지자체가 참여하여 지역민에게 수준 높은 세미프로리그급 볼거리를 제공하고 향토 지역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기능을 포함한다. 활동 방식편집 과거 운영방식 - 단일 기업이 선수를 전문 야구선수로 채용, 버스/숙소/급료/용품/운영경비 일체를 부담하여 운영하는 방식(프로야구 이전, 사실상 프로구단 역할 수행); 은퇴 후, 현업으로 복귀하지만 업무 부적응 등 문제점 발생. 향후 운영방식 - 도시대항전에 참여하는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야구단으로 구성, 활동한다. 우선 지자체 단체장이 구단주를 맡아 지역을 대표하는 위상을 세워주고 매년 대회 참가비만 지원한다. 그리고 지역 또는 후원 복수 기업이 야구 선수를 분담 채용, 급료와 수당만 부담하며 용품 등 기타 운영비용은 연맹의 스폰서쉽으로 충당한다. 선수들은 평일엔 소속 직장에서 근무하며 주말리그제 경기에 참여한다. ; 단체 훈련은 평일 2회 근무 후 별도 시행(하절기에는 이른 아침 훈련)하며 년중 선수 체력소진 부담없어 향후 수도권에서 돔구장이 활용될 경우 11월~2월까지 동계리그도 시행한다. 대학야구연맹이 독립할 경우 주말리그 경기에 한해 대학/실업 팀이 함께 참여하는 종합선수권대회(리그)를 각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참가하는 투어 형식으로 진행하거나 수도권 4팀 정도는 평일에도 수준높은 전력을 위해 별도 페넌트레이스를 진행할 예정. 1기 회장단 및 임원진(2011년 6월 ~ 2015년 6월) 기술이사, 경기이사, 심판이사 등 실무 이사진은 2017년 공식적인 독립야구리그 출범 전, 야구계 인사 추천 후, 결정 예정. 2기 회장단 및 임원진(2015년 6월 ~ 현재) 실업야구는 1923년 5월 23일 조선야구협회가 구성되어 해방 후 1946년 공식 출범한 이래 1982년 국내에 프로야구리그가 출범하기 전까지 사실상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성인 아마야구를 주도했다. 1982년 프로야구리그가 출범하자 군,은행,공기업 일부가 참여하여 2002년까지 전국체전과 백호기 실업야구선수권대회등으로 실업야구 팀과 대회가 존속 되었으나 프로야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정 조건과 인기 저하로 더욱이 1997년 몰아닥친 IMF파동 이후 참여 기업들에게 재정 압박이 가해지자 하나 둘씩 팀 해체가 되며 2003년에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후 2008년 박영길 전 롯데감독이 재출범 시켰으나 운영 어려움을 겪다 2009년 가을 대한야구협회 이사회에서 해체된 후, 대한야구협회에서 2011년 1월 이사회를 통해 KT,HP,ORACLE 등 IT기업인들을 참여시켜 재출범하여 현재 경기도에서 추진중인 독립리그 출범 및 고척동돔구장 건립상황 추이를 지켜보며 아마야구의 큰 축으로써의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영길, 김양경氏에 의한 연맹체 유지 실패-2008년~2009년] 이후 실업야구는 프로야구 각 구단의 군 미필 선수들을 위해 경찰청, 상무마저 프로야구 2군리그(퓨스리그)로 참여하면서 실업야구의 정체성과 함께 기본 토대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물론 2000년대 중반 이후 야구계 원로 일부가 나서 부활을 주장하였다. 이에 2009년 KBO 하일성 사무총장에 의해 KBO에서 실업야구연맹 출범 지원을 결정하여 초대 회장에 박영길(전 롯데 감독. 현 스포츠서울 자문위원), 부회장 김양경(전 KBO 심판위원) 외 최의상(전 경기도야구협회 국제이사), 김용철(전 롯데자이안츠 선수, 전 경찰청 야구단 감독), 김성균(전 두산베어스 선수) 등이 주도하는 한국실업야구연맹(KBBF / www.kbbf.org)이 구성되어 2009년 1월 강승규 회장의 취임과 함께 대한야구협회 정기총회를 통해 최종 산하 준가맹 단체로 승인이 된다. 이후 과거 실업 팀들과 운영 컨셉이 다소 다르지만 일구스포츠, 서울탁주 등 총 3팀이 참가하기 위해 신월야구장에서 트라이아웃을 통해 60명의 선수를 선발하여 첫 대회를 치른다, 하지만 평소 독립야구단 창단에 관심을 가지고 선수출신을 꾸준히 취업시키던 현 한국실업야구연맹 운영진이 당시 대한야구협회 추천으로 이상현 사무처장과 직접 면담을 통해 지원하던 광명전기 실업팀은 대회 1차전에서 선수출신이 1명만 활동하는 소위 사회인야구팀과 짜여진 대진에 당황하며 경기를 포기하면서부터 불신하게 되며 결국 탈퇴하게 된다.(당시 박영길 회장, 김양경 부회장은 조직력을 갖추기 위해 전국 직장야구단들을 참여시키려고 서울 모처에서 현 한국실업야구연맹 임원진을 만나 설득하여 참여를 유도하였다.) 당시 박영길 전 롯데감독 체제의 실업야구연맹은 출범 첫 해 1억이 채 안 되는 KBO 지원 외 별 다른 스폰서쉽을 유치하지 못해 운영에 큰 난항을 보인다. 이런 가운데 선수출신이 일부 포함된 사회인야구팀을 하부리그로 포함시켜 1,2,3부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실업야구연맹 조직을 키우려고자 하였으나 진정한 실업야구를 위한 준비로 야구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2009년 9월 대한야구협회 이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지적 당함) 우려의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이어지게 된다. 특히 실업야구연맹의 대회 개최 장소로 협회에서 신월구장 확보를 지원하자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에서는 강력히 반발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해외와의 실업야구 교류를 통한 토대 마련을 위해 박영길 회장은 최의상 국제이사와 함께 일본으로 시선을 돌려 간사이 독립리그에 진출시킬 세미프로 독립리그 팀 '코리아해치'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사회인야구단을 모집하여 일본에 이벤트 형식으로 원정경기 프로그램을 경험한 최의상씨(前 경기도 야구협회 국제이사)가 실질적으로 구단을 운영하였는데 운영초기 스폰서쉽 유치에 한계를 드러내며 재정부족 상황이 되고 코리아해치의 운영이 초기부터 흔들리게 된다. 결국 재정적 압박이 더 심해졌고 마침 대한야구협회 산하 단체 명분으로 사용하던 신규 건립된 신월야구장 사용권을 놓고 사회인야구 관련 단체인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회장: 이동호)과 심각한 갈등까지 빚게 되며 단체 승인이 대한야구협회로부터 취소된다. 당시 박영길,김양경 회장단의 직접적인 관여가 아닌 실무진의 독자 행동이라고 거론되어 문제가 야기되었지만 대한야구협회에서 사용일수에 대해 우선권을 가진것을 알고 무리하게 구장사용권을 독식하기 위해 무단 협회 직인을 사용하는 일이 벌어져 결정적으로 신뢰감에 타격을 입고 단체 등록이 취소된다. 이에 더욱 더 문제가 심각해지는것은 엘리트야구가 아닌 사회인야구를 주도하는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회장: 이동호)에서 실업야구연맹 개최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는 사회인야구 전국대회 출전 불가라는 제동을 걸게 된다. 당초 야구계 발전을 위해 기대했던 야구단체들간 상호협력은 온데간데 없이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는 야구선수 출신들에게 실업리그에 출전하는 선수는 생활체육 관련 대회 참여 불가라는 활동 제약 공문을 16개 시도 지부로 보내게 되는데 이로 인해 다수의 사회인야구리그에서 활동하던 선수출신 선수들이 소속 문제로 실업야구에 선뜻 참여를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여기에 대한야구협회 이사진중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는 물론 대한야구협회 이사진으로 이중 소속되어 활동중인 임원들이 반대에 나서면서 하루 아침에 박영길 회장을 비롯한 실업야구 추진 인사들은 뜻 밖의 야구계 내부의 장벽을 만나게 되며 퇴진하게 된다. 당시 일부에서는 실업야구를 기획하고 주도했던 전 일구회 소속 김양경氏(현 연식야구연맹 부회장)가 지나치게 쓴소리를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에 하는 등 뿌리깊은 불신감을 표출하며 상호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렇게 양 단체가 극심한 대립 끝에 2010년 9월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박영길 회장이 주도하는 실업야구연맹은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의 저지로 전용구장 확보를 하지 못하며 스폰서쉽 유치도 실패하는데다 결정적으로 참여 구단의 부족으로 대한야구협회 산하 가맹단체 등록이 해제되는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새로운 실업야구연맹 단체 결성, 출범 - 2010년~2011년] 2008년 대한야구협회장으로 취임한 신임 강승규 회장을 비롯하여 윤정현 전무이사 등 야구계 뜻 있는 인사들에 의해 실업야구리그 부활은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래도 단일 기업팀 창단이 어려운 현실을 단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선 직장야구의 활성화를 통한 선수취업 시스템을 보완 발전시켜 새롭게 실업야구연맹 단체를 결성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특히 전국대회의 지나친 서울 집중으로 많은 지방 아마추어 야구단들의 원정 부담과 이에 따른 경기력 저하는 물론 재정 악화에 대한 변화 인식을 가지며 대전,충남이 전국적 야구메카로의 발돋움 에대한 기대를 가지고 우선 규격 야구장 건립을 위해서는 엘리트 특히 실업야구팀이 창단되어야 한다는데 충청남도는 물론 대전일보, 동양강철을 비롯한 충청권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현 한국실업야구연맹 집행부는 2010년 12월 인천-아부다비 노선에 신규 취항하여 기업 고객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홍보가 필요했던 에티하드항공 등 외국계 기업 임직원까지도 참여시키게 된다. 동시에 강승규 대한야구협회장이 취임하자마자 개혁 대상으로 분류되던 협회 사무처 직원들에 대한 인사처리 시도 등 아마야구 시스템 변화 시도에 공감하던 전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김종민 한국직장야구연맹 실업야구 자문위원이 2005년부터 운영 컨셉을 기획, 지원하여 개최중이던 지식경제부장관배 전국직장야구대회 참가 250여개 기업 회원사들을 통해 실업야구선수 채용 본격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에 실업야구 부활과 채용지원에 뜻을 같이하는 전국 주요 도시의 각 공단지역 직장야구단 임원들이 주도하여 울산, 청주, 구미, 수원, 원주, 논산, 군산, 창원시민야구단이 8팀이 가 창단된다. 드디어 2010년 새로운 단체에 의해 실업야구연맹이 태동하고 그 첫 경기로 군산 월명야구장에서 5월 5일 의외로 500여명의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개막전(구미: 군산)을 필두로 2년간 목표를 세우고 시범리그 운영이 시작된다. 새롭게 가 창단된 시범운영 8개 실업 팀은 대부분 지역 직장야구리그에서 활동중인 국민생활체육과 무관한 신규 채용선수들이 참여하여 직접적인 갈등을 피하게 된다. 또한 일죽IC 인근에 투자 유치를 통해 인조잔디 1면(좌90, 중100, 우90미터)을 확보하여 토요일 오후에 시범운영대회 경기, 훈련 장소 문제를 해결한다. 당시 대한야구협회 이사회 이사이자 국민생활체육전국야구연합회에서도 활동중인 김광철 부회장의 기존 박영길 회장 체제의 실업야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감지하여 최소 몇 년간 대한야구협회에서 사용하는 신월이나 구의야구장을 사용하지 않는 다소 비상식적인 요구를 실업야구연맹은 받아들이는 결정을 하게 된다. [실업야구 시범운영 2011년~2013년] 2010년 한해 시범운영과 야구계 내부의 진정성을 가진 인사들이 시범운영 경기 현장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경기력 등 가능성을 보고 2011년 1월 19일 대한야구협회 이사회 승인을 통해 현 한국실업야구연맹은 공식적인 회원 단체로 인정받게 된다. 이후 서울에서 3월 임시총회가 열리고 6월 17일에는 대전 리베라호텔에서 대전일보 사장인 남상현 회장을 임기 2년으로 추대하는 등 한국실업야구연맹이 공식 출범한다. 당시 충청남도 정무부지사였던 김종민 자문위원이 충남지역 규격야구장 확보 지원 요청 차원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를 비롯한 충남 체육관계자에게 천안, 공주, 계룡, 서산 등 야구인프라가 들어설만한 지역에서의 인프라 확충을 강조하였고 2011년 1월 개최된 대한야구협회 이사회까지 직접 참석하여 지자체 기반의 실업야구 출범을 강조하게 된다. 한편 연맹 초기 재정은 실업야구 등 아마추어야구 매니아로 알려진 LED전문 기업인 원테크놀로지와 군수용 금속표면처리제 석유제품을 유통하는 폴리트론 김재구 회장의 출연에 크게 힘 입어 시작하게 된다. 또한 이규태 일광복지재단 이사장(현 이화여대 겸임교수, 대종상조직위원장)도 뜻을 가세하여 선수 취업에 발 벗고 나선다. 그러나 시범운영 시작단계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발생한다. 먼저 과거 실업 팀을 보유했던 창원 소재 덴소풍성(경남 창원 및 충남 홍성에 공장 각각 소재)이 연맹의 지원 속에 재창단에 나섰음에도 창원에 프로야구단 9구단이 유치되는 움직임이 보이면서 사실상 시범운영 첫 해에 리그 참가 및 구단 공식 창단을 포기하게 된다. 이어 수원을 연고로 한 시민야구단 역시 한동안 수원야구장을 힘겹게 섭외하여 사용하며 수원시에 창단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프로야구 10구단 창단 추진 분위기에 파묻히며 마침 시민야구단 창단에 관심을 보인 김만수 시장의 부천시로 공식 창단 전까지 연고지를 옮기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현대중공업 등에 물류서비스를 공급하는 현대상운에 선수들을 주로 채용하여 운영하던 울산시민야구단은 소속 선수들의 주말 교대근무로 인한 시간 부족과 원거리 원정경기에 대한 부담외 장거리 이동에 따른 교통사고가 발생하며 사실상 페넌트레이스에 지속 참여하는데 어려음을 호소하게 된다. 타타대우상용차에 10명 이상 선수들을 채용하여 운영을 시작한 군산시민야구단 역시 지역 특성상 통합된 야구조직이 있어 당초 굳건한 협력을 약속받았지만 결국 생활체육야구 대회 일정에 발목을 잡힌 시민야구단 선수들의 지방 원정경기 불가로 실업야구연맹은 호남에서 만난 첫 군산시에서 허무하게 발길을 돌리게 된다. 당시 한국실업야구연맹은 군산시의 생활체육 야구단체에 대해 지나치게 끌려가는 군산시 체육행정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원정경기에 단 한번도 참여하지 않는 생활체육단체 소속이면서도 자발적으로 역할을 맏아 나섰던 군산 시민야구단 임시 운영진에 대한 현 실업야구연맹의 불신감으로 군산시민야구단 개막전 흥행이라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창단이 보류된다. 현재 3년간 실업야구 시범리그 운영을 통해 얻어낸 성과는 실업야구 부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분석된 각종 자료와 운영 노하우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절반의 성공,절반의 실패를 통해 실업야구가 안정되게 정착하는데 적정 시간이 필요하며 최우선 과제가